산산조각, 정호승

모든 선택지
혹은 선택할 수 없이 당한 일도
의미가 있고 다 옳은 길이지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매니아가 선정한 만화책 TOP 200 중 내가 본것

오늘은 일요일이다.

사실 할게 너무 많다.
회사 잔업 2시간가량 해야하고, Git 책 0장도 써야하고(갑자기 0장이 생김), 6월 10일까지 인강 3시간짜리 찍어야하는데 시작도 안했다.

그래서 나는 만화책을 보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
리디북스에서 권당 700원으로 볼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만화’에 있으니 반드시 봐야하는것이긴 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빨리 봐야함.
그 리스트에서 나는 32개를 봤넹. 재밌다. 근데 내 다른 인생만화들이 없어서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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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회고

(Header illustration credit by YoungJin Lee)


2017년이라고 타이핑 하는것도 적응 못했는데 이제 2018년이 끝난다니.
올해의 10가지 꼭지만 간단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가볍게 몸무게 재는 것처럼, 마일스톤식의 기록!
(몸무게 재는 것은 가벼운게 아닌가)

1. 2018년 가장 잘 한 것: 복싱

복싱을 시작했다. 2월 말부터 했으니 이제 10개월째다.
정말 재미있어서 억울하기까지 하다. 고등학교때부터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정도.
처음에는 쨉 쨉 원투 칠 때 몸이 팔랑팔랑 흔들렸는데 이제는 꽤 코어를 잡고 퍽/퍽/ 친다. 저번에는 관장님이랑 같이 연속동작 시범 보였는데 고딩즈가 “와아악!! 졸라 빠르다! 개 잘한다!!” 해서 흥분해서 무리하다가 다음날 근육통으로 고생했다.
꾸준히 해서 단증을 따고 싶다. 아직 스파링은 시도조차 못 했지만… 과연 누군가를 힘껏 때릴 수 있을까?

2. 가장 큰 변화: 이직

Illustration credit by YoungJin Lee

스마트스터디에서 ZEPL로 이직했다. 정말 큰 변화다. 사원 수는 전 회사의 1/10도 안 되는 작은 회사지만 여기는 기술 회사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만드는 서비스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데이터 분석 되는 구글 독스’다. 이것의 프런트엔드를 만들려면 상태관리를 오지게 해야한다. 처음에는 코드 보고 토했는데 이제 조금 적응해서 밥값하려는 중이다.
특이한 점은, 회사에서 내가 프런트엔드 엔지니어 외에 커뮤니티 매니징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든 커뮤니티가 Little Big Data랍니다. 커뮤니티 매니징이 내 몸값을 올려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회사가 싫어하는 내 투잡인줄만 알았는데… 정말 신기하다.

3. 간절히 공부한 것: 영어

ZEPL의 공용어는 영어다. 직원의 반이 외국인이다, 7개국 정도려나. 면접 볼때 가장 떨렸다. 나는 23살때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받은 토종 한국인이다. 영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회화는 다른 일이니까. 그래도 어찌저찌 입사하고 매일 영어 읽고 쓰고 하니까 조금씩 늘더라. 처음엔 전화영어 3개월을 하다가 회사에서 대화하는 것과 크게 차이 없어서 끊었다. 아직 초딩 영어지만 외국 나가서 친구 사귈 수 있으면 장족의 발전을 한거지 뭐. 넷플릭스 영자막으로 보는건 기효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같이 영화 볼 때 한글 자막 틀면 싫어한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영어자막도 없애자고 한다. 너무한다.
스피킹과 발음에 도움이 많이 된 건 팟캐스트 ‘대박 영어회화표현 405’이다. 걸어다닐 때 들으며 섀도잉(그림자처럼 따라하기)하면 시간도 잘 가고 재밌다. 팝송 녹음하는것도 발음교정에 도움된다. 당장 가수 발음이랑 다르니 몇번이고 다시 녹음하게 된다.

4. 새로 생긴 취미: 음료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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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다이빙을 배울 때 인상깊었던 말이 있다.
> 바다를 탐험할 수 있다는 건, 지구의 반 이상을 더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음료의 맛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작년의 나는 차를 아예 몰라, 종류가 다른 티 5잔을 줘도 “이건 좀 더 쓰네.. 이건 향기가 좋네..” 정도로만 구분했다.
요즘은 매일 차를 마시고, 음료 일기를 쓴다(https://www.instagram.com/keep.this.drinking.feeling/). 조금씩 구분되는 맛이 신기하고 즐겁다. 웹툰 ‘차차차’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커피를 마시는 시간과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 든다. 이 맛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혓바닥에 집중하면 현재를 살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혓바닥을 돌아보는건가.

5. 세계는 넓고 재밌구나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이 앉아 있는 중 실내

위에 적었듯이, 나는 23세에 처음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 전에는 뭔가 해외에 나가는건 나랑은 조금 거리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년도에 외국을 많이 갔다.
1. 세부: 스쿠버다이빙 (백수기간)
2. 샌프란시스코: Facebook F8, 해커톤
3. 도쿄: 후지락 페스티벌
4. 싱가포르: Facebook APAC Summit
5. 중국: China Korea Hackathon
6. 발리: 서핑 여행

한국과 다른 풍경을 보는것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좋은건 다른 나라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다른 문화의 다른 외모의 다른 성격의 사람과 위화감 없이 왈랄라 이야기를 나누는건 생각을 넓혀주는 것과 동시에 내 코어를 기른다. 복싱처럼 코어 기른다. 복싱 하고싶다.
이렇게 다양한 친구를 조건 없이 사귈 수 있게 해 준 건 Facebook Developer Circle 덕분이다. 참 고맙고 건강한 조직.

6. 이상한 깨달음: 업무 외 시간에 업무를 하지 말자

이건 10월쯤에 절절하게 느꼈던 것 같다. 업무 외 시간에 업무를 하지 말자.
회사에서 리모트 및 자율출퇴근을 하니 업무와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면이 있었다. 매일 아침 스탠드업 회의(화상)로 일정공유를 하니 매일 매일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회사에 온지 이제 6개월정도 되어서 잘 하는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컸고.
침대에서도 일 하고 집 앞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코딩하는게 참 자유롭고 행복하고 일하는 느낌이 안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일주일을 새벽코딩했더라. 토요일에 잔업한건 한달이 되어가고.
돌아보니 생산적 개발은 업무시간에 80% 이상 몰려있고, 업무 외 시간에는 짜치는 일이나 버그를 잡고 있었다. 가시적인 ‘성과’가 아닌 일들. 그리고 내 성장곡선에 영향이 미미한 것들. 업무 외의 시간은 잔업보다는 나를 위해 쓰는게 나 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도움될 것이다. 바부!

7. 커뮤니티는 나의 Vocation

  • 컨퍼런스 개최 5회 (LBD, Facebook Build Day, Planet Hackathon, 데이터야놀자, Study Circle)
  • 세미나 발표 5회 (F8 extended, Grow with the community, 삼성 소프트웨어 페어, KOSSCON)
  • 교육 기관 강의 2회 (한이음, 국민대학교)

오픈프론티어 발표하는 김에 올 해 커뮤니티 활동을 얼마나 했는지 세어봤는데, 월 1회 했더라. 정말 꾸준히 했다. 나는 참 커뮤니티 활동이 재밌다. 천직이란 생각이 든다.

8. 이걸 사서 삶의 질이 바뀌었습니다: 생리컵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든 반영구 컵. 생리컵은 혁명이다. 생리의 고통이 1/2로 줄었다. 어찌 보면 그 이하? 훨씬 산뜻해진다. 다만 처음에 갈땐 피의 지옥을 볼 것이야. 그래도 요령 생기면 2분내로 깔끔하게 슥삭이다.
내 골든컵(본인에게 맞는 컵)은 메루나컵 종 모양이다. 처음에 산 밸브형은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그래도 생리컵 포기하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직구를 했던게 신의 한수였다. 가히 올해의 Top 1 구매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 드립치고 싶었는데 참았다.

9. 이것만은 안 할거야 했는데 한 것: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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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 쓰는건 좋은데 글 쓰는건 싫어한다. 글 쓰기 자체는 좋은데, 누가 시켜서 마감일 내에 쓰는것이 싫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존의 집필 제안들은 모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나는 계약서를 쓰고야 말았다. 이 주제, Git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도 아주 맘에 든다. 1부는 GUI로 감 잡기를 내가 집필하고, 2부는 CLI로 마스터하는걸 정교수님이 집필해주신다.
다만 내가 너무 느리게 써서 편집자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비쥬얼적이게 제대로 이해 쏙쏙 되게 설명했다. Git책에 한 획을 긋고싶다.

10. 외모적 변화: 안녕 눈화장

어제 호텔에서 사우나 끝나고 엄마가 말했다. 밖에 나가기 싫다고, 화장 안해서 쪽팔린다고. 화장을 해야지 밖을 나갈 수 있다는건 무엇을 시사하는걸까.
눈화장을 안 하기 시작했다. 복싱할 때 지우기 귀찮았던게 계기였다. 작년에는 아이라이너를 안 그렸을 때 ‘음 오늘은 눈화장을 안 했군… 부끄럽군’ 했던 것 같다. 파운데이션에 립스틱 바르는건 그리 귀찮지 않은 것 같은데, 이것도 벗어나면 더 편하려나. 남자가 립스틱 안 발랐다고 어디 아프냐고 묻진 않잖아.


2019년에는…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 역시 나는 글 쓰는걸 좋아한다. 근데 마감이 있는건 싫어!!! 집필 싫어!!!

내년에 하고 싶은 몇 가지 계획이 있다.

  1. 게임에 취미를 붙여보기 – 콘솔 게임: 젤다, 오버쿡드 등
  2. 책 읽기 – 리디북스 정기결제 해두고 돈만 술술
  3. 영어공부 개인프로젝트 앱을 만들어야지

사실 치열하게 살고싶은 마음은 좀 죽었다. 예전엔 더 이것저것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더 다양한 즐거움을 변태처럼 즐겨보고 싶은 욕심은 크다. 더 많고 맛있는 술의 세계, 차의 세계, 게임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손도손 복작복작.

취향 알아가기

취향을 찾으면 인생이 한껏 더 풍요로워진다.

글로서 make it clear 하게 해볼까

음악

(호)

  • 멜로디가 있는 자유로운 재즈
  • 데카당 – A
  • 클래지콰이
  • 단편선과 선원들 동행 9분 13초의 라이브
  • 3호선버터플라이의 톤 스튜디오 라이브
  • 금능에서 들은 검정치마의 Everything
  • 브루노마스의 귀여운 그루브의 뮤직비디오들
  • Khruangbin의 50분짜리 피치포크 라이브 영상
  • Wouter Hamel의 노래를 breezy한 날씨에 듣기

(불호)

  • 즉흥 재즈
  • 기승전결이 명확한 노래 (e.g. 윤종신, 백지영의 노래)
  • 나는 순수하고 귀엽고 유니크하다는 자기애 넘치는 노래 (e.g. 악동뮤지션의 노래)

시간을 보내는 방법

(호)

  • 맛있는 곳을 찾아 홀로 밥 먹기
  • 보드게임
  • 격한 물놀이(서핑, 스쿠버다이빙)

날씨와 풍경

(호)

  • 더운 날씨에 민소매 입기
  • 사람 없는 바다
  • 파란 시간에 음악들으며 걷기
  • 탁 트인 장소(옥상, 바다)에서 노을 보기. 옆에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므로.

(불호)

  • 시티뷰, 야경

여행 스타일

(호)

  • 대중교통 없이 걷고 걷는 여행. 걷기 좋은 도로
  • 뚜렷한 액티비티의 목적: 서핑 / 스쿠버다이빙
  • 바다 보며 코딩
  • 지나가다 보이는 로컬식당 구글맵 정보 한 번 스캐닝하고 들어가기
  • 돈 적게 쓰기

(불호)

  • 사람이 많은 장소
  • 진부한 디자인/컨셉
  • 이동 시간이 긴 것
  • 돈을 많이 쓰는 것
  • 로컬음식이 아닌 것을 먹기

(호)

  • 천명관, 고래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김훈, 남한산성 (아 내가 좋아하는 책 다 마초가 써서 짜증)
  • 김소연, 마음산책

만화책

(호)

  • 20세기 소년
  • 엔젤전설 / 클레이모어

영화

(호)

  • 톰 크루즈가 나오는 영화 (e.g. 바닐라 스카이, 제리 맥과이어, 마이너리티 리포트)
  • 잭 블랙이 나오는 영화 (e.g. 테네이셔스 디, 스쿨 오브 락)
  •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 (e.g. 선리기연,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불호)

  • 박찬욱 감독 영화를 뺀 대부분의 한국 영화
  • 세 얼간이

음료

(호)

  • 루이보스 티
  • 아이스 라떼
  • 맥주
  • 사케, 고량주, 청주
  • 산미가 약하고 진한 아메리카노

(불호)

  • 와인 (알고싶지만 모르겠음)
  • 쓴 홍차
  • 봄베이 사파이어, 단 칵테일

여행지

(호)

  • 제주도 협재의 조용한 만화 게스트하우스와 바다
  • 치앙마이의 걷기 좋은 거리
  • 발리 아야나 리조트와 서핑
  • 로컬 바에서 칵테일 이것저것 시켜먹기
  • 내 든든한 여행메이트와 함께 간 미국여행

(불호)

  • 지나다닐때 뚫어져라 쳐다보던 세부 거리
  • 한인들이 많았던 사이판
  • 차가 막히고 어지럽고 다 똑같은 물품을 파는 발리 스미냑과 쿠타

 

프런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프런트엔드 개발자의 이직기

White hand가 되다

12월 말, 영하 20도. 2년간 행복했던 스마트스터디에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한창 송년회 시즌이어서 바쁜 벌꿀이 되어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사람들마다 퇴사의 이유를 물어서 대답하는게 빡셌다. 앞으로 물어볼때마다 커피 1잔!)

사실 다음 회사는 asbubam님의 공개 레주메처럼 공개구직을 해보고 싶었다. 어찌어찌 바라던 되로 되었지만, 막막했다.
가장 우려되었던 것은, ‘과연 내가 원하는 회사를 갈 만한 실력이 있는가?’.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근데 지금 가고 싶은 회사가 없다’.

나는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그 전에, 과연 나는 개발자가 되고 싶긴 한걸까?

사실 만들고 싶은 분야가 명확했다. 중학교 때부터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관리 방법론’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초시계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보고, 불릿 노트, 뽀모도로, 엑셀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처음 개발한 토이 프로젝트도 ‘Food Todo‘라는 게이미피케이션을 입힌 투두리스트였다. 만들고 싶은 것을 위해 개발을 하고, 부가적으로 디자인과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프런트엔드 개발이 가장 재미있지만, 백엔드와 디자인, 그리고 기획에도 참여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왕 시간 많은 백수가 된 겸, 다양한 회사에 놀러가 대화를 나누어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회사를 찾고 싶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포인트는 다음과 같았다.

  1. 온라인 서비스로 먹고 사는 곳인가: 전 직장이 컨텐츠 회사여서 이번엔 개발한 프로덕트가 중요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2. 사업의 확장성은 어떻게 되는가: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3. 내 업무의 범위는 어떤가: 프런트엔드 개발을 메인으로 하고, 기획과 디자인에도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일단 블로그 메인 화면에 간단한 이력을 적고, 최상단에 Available for hire상태를 걸어놓고 관심 있는 회사는 메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29개의 메일 중, 9개 회사에 티타임 신청을 하였다. 그렇게 과로사 할 것 같은 한달간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티타임 혹은 알콜타임

티타임에서 깨달은 가장 큰 점은, ‘한국에 가고 싶은 회사가 없다’라 말한 내가 정말 멍충했고 우물 안 개구리었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가 함께 일할 개발자들과 이야기 나누니, 회사마다의 고유한 매력이 눈에 띄었다. 아래 리스트는 모두 티타임 후 입사하고 싶어졌던 회사들이다.

금융 관련 서비스
개발을 정말 사랑하고 깊숙히 다루는 고수들이 모여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비스에 대한 CTO님의 확신과 비전이 멋졌다. 티타임 프로세스도 체계적이었다.

포인트 관련 서비스
내가 매우 선망하는 디자이너님이 계시는 회사이다. 함께 일하면 UI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많이 성장할 것 같은 기대가 들었다. 파이썬을 정말 잘 쓰는 회사인 것도 좋았다. 페미니즘적으로도 다니기 좋은 회사라는 점도 큰 플러스 포인트였다.

게임회사의 데이터분석 팀
팀 멤버분께서 나를 잘 소개해주셔서 티타임(실은 고기타임) 분위기가 좋았다. 서로의 장점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런트부터 백엔드, 그리고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식품 관련 서비스
회사 이야기 외에도 앞으로의 비전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어서 즐겁고 뜻깊었던 시간이었다. 매출액이 커서 놀랐다. 회사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렜다. 회사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대한 애정과 확신도 큰 차밍포인트였다.

대기업의 스핀오프
전에 뵈었던 좋은 기억의 개발자분이 소개해주셨는데, 4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자’의 시간이 길었음에도 이렇게 재밌었던것은 오랜만이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제안해준 롤도 마음에 들었다. 당장 지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 조만간 또 볼거라는–말을 들으며 헤어졌다.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여기도 2시간이 금새 흘렀다. 처음 뵌 대표님과 CTO님도 유쾌&진지가 섞여있어서 즐거운 분들이었는데, 그 외 팀원들도 내가 뒤에서(?)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호감이 상승했다. 서비스도 원래 내가 잘 쓰고 있었고 해결하려는 메세지가 나의 비전과도 통해서 관심이 갔다. 모두가 반말을 쓰는 문화가 재밌었다(정말로 반말)

포털의 머신러닝 조직
머신러닝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고, 백엔드-프런트-디자인을 내가 원하는 기술을 써서 만들어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 강점과 취미가 ‘돌아가는 것을 빠르게 프로토타이핑’라는 것이니까. 피부 톤을 머신러닝으로 알아내는 것을 만들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글로벌 오픈소스 스타트업
소스콘때 인연으로 알게 된 CTO님이 메일을 보내주셨다(역시 커뮤니티는 짱입니다). 메일을 보고 감동받아 트위터에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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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시작된 배경, 앞으로의 비전, 그리고 내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서로(회사와 나 모두) 얻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메일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기술, 연봉, 문화, 재미 면에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유림님이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림님이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어떤 도전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것저것 메일로 질문했고, 다정하고 디테일한 답변을 주셨다(11개의 메일을 주고받았네). 지원하겠다는 메일을 보내니 CEO님과의 티타임 일정이 잡혔다. 이태원 카페에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팀에 대한 신뢰와 서비스에 대한 확신 가득한 에너지가 느껴쪘다.
무엇보다, 내 다양성을 존중해주었다. 네가 원하면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고.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 해도 되고, 혹시 영어가 문제가 된다면 통역과 함께라도 제대로 해보아라.
내가 중점으로 둔 3가지 포인트(온라인 서비스, 확장성, 업무 범위)를 모두 만족하는 유일한 회사였다. 그렇게 마음속의 1지망이 되었다.

면접을 보자

함께 퇴사한 분들이 여기저기 추천해주셔서 면접은 퇴사 직후부터 바로 진행되었다.
중간에 일주일간 세부에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오느라 면접 프로세스가 조금 길어졌다(표는 예전에 사뒀지만 뜻밖의 퇴사여행이 되었다).

메신저 회사
처음으로 본 기술면접이었다. 벼락치기로 준비했고 생각보다 거기서 많은 질문이 나와서 열심히 대답했다. 8할 이상이 js질문이었다. 끝에 “이 팀은 일본 출장도 종종 가는데 괜찮으신가요?”물어보기도 해서 좀 행복했다. 그리고 결과는 광탈이었다. 흑흑..!

게임회사의 데이터분석 팀
해커랭크로 코딩 테스트를 보았다. 5시간에 3문제를 푸는거였고, 난이도는 코드워즈나 해커랭크 푸는 분들께는 양호한 정도였다. 이후는 기술면접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1시간 일찍 와서 필기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CS관련 문제들이 나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반을 백지로 냈다. 면접관으로 2분이 오셨는데 긴장도 풀어주시고 감사했는데 두분 모두 백엔드 개발자셨다. 프론트 질문이 없어 아쉬웠다. 그리고 2번째 광탈을 했다. 이쯤 되니 마음이 쫄리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가고 싶은 회사에 갈 수 있을까?

포털의 머신러닝 조직
전에 봤던 면접의 감을 살려 1차 기술면접을 보았다. 여기도 js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2차 기술면접 안내가 왔다. 내가 이상하게 봐서 재검증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원래 있는 프로세스라더라. 2차에서는 리액트를 물어볼 것 같아 공식문서를 정독하고 갔다(번역해준 조은님 감사합니다). 이는 오산이었고 내가 대답을 잘 못하는 게 보여서 분하고 아쉬웠다. 끝나고 대답 못했던거 찾아보며 많이 슬퍼했다. 확실히 면접에서 공부가 최고의 효율로 잘 되는 것 같다. 이번 면접을 통해 정말 많이 성장했다. 살짝 반전은 2차 기술면접에 통과해서 임원면접을 보러갔다는 것이다. 20분 정도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합격 메일을 받았다. 신났다.

글로벌 오픈소스 스타트업
이 회사 면접 프로세스의 특이한(?) 포인트는 3가지가 있었다.
1. 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된다: 작은 회사지만 5가지 인종이 섞여있고 영어로 일한다
2. 인터뷰 단계가 길다: 폰인터뷰 -> 과제(7일)&폰인터뷰 -> On-site인터뷰
3. 마지막 On-site인터뷰는 6시간이다

의외의 사실은 이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는 것이다. 폰 인터뷰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경험한 기술에 대한 질문이었고. 과제는 만드는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우 즐거운 과정이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코딩하고 디자인하니 기분이 좋았고(약간 오랜만에 운동한 기분) 새벽 4시까지 하곤 했다. 간단한 노트북을 만들었다. 가장 부담스러웠던 6시간짜리 On-site인터뷰는 특이하게 내가 혼자 주저리 말하는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 주고받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코딩했으며, 한 시간씩 로테이션하며 새로운 팀원과 함께 코딩을 해서 나도 회사와 개발문화에 대해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도움되는 자리였다. 아침 10시에 와서 저녁 6시에 끝났다. 함께 점심도 먹었다. 다음 날 합격 메일을 받았다. 앗싸 소리가 나왔다. 한 달간 고생한 게 떠올랐다.

연봉협상

추운 날 퇴사했는데, 계약서에 싸인하러 가는 날에도 한파주의보 문자가 왔다. 추위에 내가 떨리는건지, 연봉협상에 떨리는건지 모르겠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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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다. 역시 외국계. 스톡옵션이 있어 서비스를 성공시키겠다는 욕심이 물씬 난다. 이것이 페이열정?
연봉협상 후 카페에 와서 치앙마이행 비행기 표를 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사실 치앙마이다. 10일간 디지털노마드 하러 왔다(어제 DAY1 후기를 썼다).

다녀와서 아파치 제플린의 회사, ZEPL로 출근합니다!

힘들었던 순간

생각보다 면접 과정이 길었다. 합격한 두 회사 모두 퇴사하자마자 지원했는데 딱 한 달 걸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리는게 힘들었다. 코인 시세 보는것처럼 30분에 한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재미있는 넷플릭스를 봐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결과 기다릴 땐 보통 3시간도 못 잤다.

그리고 뜻밖의 힘들었던 점은, 가족이 건강보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모두 백수 기간이 겹쳤는데, 부양가족 3인을 맡던 내가 퇴사해버린것이다. 취직하니 나 엄마 아빠가 모두 행복해했다. 엄마가 그 사이에 알바하느라 고생하셨다.

하루는 술을 너무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뻗은 날이 있었다. 다음 날 엄마가 내 등짝을 후두려패며 어제 Josh에게 연락 계속 오길래 당신께서 유림이 집에 들어왔다 답장하셨다고 했다.  대화 내용을 무방비하게 봤다가 눈물이 급 나왔다.
잘 들어왔다니 다행이라고, 유림이가 요즘 면접 준비로 심적으로 지쳐있어서 그랬나보더라고.
엄마의 답장으로는, 유림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거 잘 안다고. 다음에 맥주 사겠다고.

묵묵히 응원해주고 함께해준 가족도 고맙지만, Josh도 정말 정말 고맙다. 문자 그대로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고, 이력서와 면접 준비에 너무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기 죽지 말라며 맛있는 것을 꾸준히 맥여주었다. 베리 땡큐고 찡하다.

아 맞아 13년도 비레티나 맥북으로 작업하는것도 힘들었다. 정말… 느리고 중간중간 죽는다.

다시, 출근

이직은 내게 생각치 못한 것들을 주었다. 자바스크립트를 다시 깊이 파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 자신이 현재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도 느꼇다. 회사에 방문할 기회를 준 지인들께도 감사하고, 본인 이야기처럼 내 말을 들어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퇴사 축하한다며 리얼한 뱀 인형을 준 연수에게도 감사하다.
사실 한 달간 요일 감각 없이 살아왔는데, 다시 출근을 해야한다는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가장 나가신다

면접 준비에 도움이 ‘정말로’ 되었던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