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나 돈 얼마 남았지…?’
계산해보니 2900바트에 100달러(환전하면 3000바트)가 있었다. 총 5900바트인데 남은건 7일이고, 그렇다면 하루에 842바트만 써야한다.
하지만 내 기록을 보면 첫 날엔 1035, 둘쨋날에 2200, 셋째날에 1428바트를 썼다. 하루에 842라니. 사실 점심 저녁 300바트, 커피 100바트, 이동비 100바트 하면 나머지 340바트는 품위유지비(?)에 쓸 수 있다. 밥 커피 이동비만 하면 800바트면 차고 넘치는 생활비다. 하지만 나는 생활에 필요 없는 것(치킨모자, 분홍 선글라스, 태국 가방, 큰 귀걸이, 지푸라기 가방, 지인들 선물)을 사야한다. 보통 시장에 파는 기념품은 200바트에서 시작해서 2000바트까지 간다. 그리고 요가 1일권은 250바트, 무에타이 1일권은 300바트다. 마사지도 250~500(저렴한 곳이).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 생활비(정정하자 노는비)는 최-소한 1000바트다. 근데 나는 하루 생활비를 700정도로 잡고 환전을 해온거시다.
여유로운 마음이 사라지고 싼것만 먹어야 할 것 같고 이제 기념품도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넘 싫었다.
생각해보니 태국돈으로는 700바트와 1000바트의 생활의 질이 현저히 차이나는데,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만원 차이도 안 난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할까 말까 할 땐 하자’
그래서 검색해보니, 마야몰의 카시콘 ATM에서 비자카드로 돈을 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은 나쁘지 않은데 수수료가 220바트(8천원)가 붙는다. 가즈아 돈 뽑으러!
일단 ATM에서 인출이 불가할 수도 있으니, 지갑과 행복을 둘 다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치앙마이에서 처음으로 재방문한 음식점, 내 사랑 카오소이멘사이! 오늘은 선지쌀국수를 시켰다. 아 이것도 너무 맛있다 흑흑 으으 너무 맛있다 내일 다른 메뉴로 한번 더 먹을까… 흑흑 타이밀크티도 넘 맛있어 흑흑… 가격도 45바트야…(1600원)
마야몰까지 걸어가다가 소프트웨어 회사 발견. 누가 기념사진 찍고있어서(디지털 노마든갑다) 기다렸다가 나도 소심하게 찰칵. 나 이제 노트북도 안 들고다닌다. 코딩 말고도 치앙마이에 할게 넘 많다. No지털 디마드다. 바지 노마드. 하루에 2만 7천보씩 걸으려면(실화다. 오늘의 만보계) 맥북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ATM에서 엄청 편하게 출금 성공! PIN번호 6자리를 누르라는데 한국 비번+00 누르니 되었다. 다행스. 나는 부자다!!! 행복하다!!! 행복의 셀카를 찍었다 오늘은 볼드한 귀걸이를 해보았다. 나는 4계절중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봄이나 가을보다 더 좋다. 민소매 입고다니는게 가벼워서.
그리고 또 치앙마이를 담을 음악을 찾았다. The 1975의 Somebody else. 제주도 갔을 때 배운건데 어떤 장소를 기억하고 싶으면 그 장소에서 하나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란다. 내 제주도 음악은 짙은의 Everything이다. 이제 이 노래를 들으면 부서지는 협재의 바다가 생각난다.
걸으면서 좋은 소식도 2개나 받았다. 둘 다 이번에 작성한 이직기에 관련된건데, 출판사에서 메일이 하나 왔고, 회사에서 새 컨퍼런스 기획해보자고 메일이 하나 왔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할 때 가장 힘이 나는 것 같다.
오늘은 H언니와 치앙마이대학을 구경갔다. 혼자 놀다가 이렇게 어디 갈때 뿅 만나는거 좋다. 관광객은 걸어서 들어갈 수 없고 꼭 투어 썽태우(오픈형 버스같은 느낌)를 타야한대. 몰래 잠입하려다가 수위분께 저지당했다. 다음엔 자전거 타고 슝 들어가야지. 투어버스는 맘에 안드는게 일단 60바트를 내야하고, 중간에 호수에서 10분 내려주는거 포함해서 30분밖에 안 걸린단다. 웨이팅도 해야 한다. 이렇게 누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려고 치앙마이 왔는데.
그래도 호수 보고싶어서 버스 탔다. 근데 생각보다 참 좋았다. 맨 뒷자리에 탔는데, 탁 트인 뒤를 보고 캠퍼스를 달리니 시원하고 즐거웠다. 방금 먹은 타이밀크티도 맛있었다(오늘 2번 머금)
호수는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물이 맑지도 않아서(오늘 날씨도 구름이 꼈다) 딱히 왜 방문해야하는지 모르겠었다. H언니와 나는 10분만 보고 나가기 싫어서 튀튀 했다. 호수를 한 바퀴 삐잉 돌았는데 반대쪽의 경치가 더 예쁘더라. 나무로 가려지는게 없고 탁 트여서 그랬다. 근데 우리 둘 다 길치라 나가는 길을 찾다가 “여기가 아닌게벼”를 8번정도 했다.
저녁으로는 벼르고 있던 펭귄마을의 ‘Barefoot Cafe’에 갔다. 바에 앉으면 눈 앞에서 직접 요리를 처음부터 해주는 컨셉이다. 밀가루 반죽부터 생면 제작, 치즈 갈기를 쭉 보는데 마음이 두근거렸다.
베이컨칠리 오일파스타와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저 면 방금 반죽하고 자르고 볶은거다.
딱 먹고 든 생각은 ‘마시땅…!’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얌얌 염염 꽐꽐 먹었다. 먹을때도 참 현재를 사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처음 겪는 경험’은 ‘현재를 살기’의 충분조건인 것 같다. 이거 외에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으니까.
파스타를 다 먹어가니, 커스텀 토핑(토마토, 바질, 리코타치즈, 베이컨)을 넣어 구운 피자도 나왔다. 이 피자는 내가 반오십년동안 먹은 피자중 단언컨데 1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빵류, 튀김류는 몇 입밖에 안먹는다. 이건 얇은 도우에 구운 토마토에 치즈와 바질이 들어가니 안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가서 피자 먹고싶다.
먹고 나오니 보이는 풍경. 고즈넉하다.
치앙마이대학 근처의 야시장에 가봤다. 기대했었는데 마야몰 앞의 야시장보다 특별한게 하나도 없었다. 여기는 정말 현지인들이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치앙마이 향이 하나도 없는 보세 옷, 공장제 핸드폰케이스, 타코야끼 등이 있었다. 마야몰 앞은 관광객 대상인지 수공예품이 많았었다.
이거 살까 말까 완쥰 고민했다. 이거 슬리퍼다. 크크크크크. 진짜 리얼하다. 친구들 선물로 주고싶은데 들고가기도 무서워서 fail (나는 죽은 물고기 공포증이 있다).
그래도 재미있는거 하나 했다! 사진으로 초상화 그려주는 예술가분이다.
Josh를 그려달라고 했다. 세부조시 흐흐 멍코같이 생겼다. 웨이팅이 길어 받는데 1시간 넘게 걸렸다.
집에 가기 전에 유명한 Cherng Doi Roast Chicken에서 닭과 쏨땀(무생채같은거)를 포장해갔다. 숙소 앞에서 Tiger라거맥주도 샀다. 오늘 꼭 먹어야 했던게 내일부터는 도미토리에서 잔다. 4인실!
만 3일만에 Josh랑 통화했다. 치킨모자 쓰고 치킨먹었다. 깝치는건 짜릿해!
내일은 이사 잘 하고 혼자 딩가딩가 놀아야지.
저녁엔 디캠프에서 오신 개발자분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