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를 다니며 개발 말고 ‘다른 것’을 놓지 않는다는 것

작년 12월에 2차면접을 보고, 1월부터 2월까지 ‘QUICKET(대표서비스 – 번개장터)’에서 디자인 인턴생활을 하였다. 7시 퇴근 후 대외활동 두개까지 마치면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곤 했다. 20년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바빴던 2개월이었다. ‘겨울방학때 자바스크립트와 안드로이드를 마스터하겠어!’라는 다짐은 개뿔, 이클립스 한번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던 2월 말. 친구가 1학기 휴먼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팀을 정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라고, 왜 가만있었냐는 문자에 머리가 째앵 하고 울렸었다. 팀원을 미리부터 짜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방학인데 얼마나 짜여지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바로 든 생각은, ‘아. 내가 프로젝트에 탐나는 팀원이 되지 못하였구나!”. 내가 만약 개발 실력이 출중했거나, 아니면 디자인이라도 심각하게 잘했다면 먼저 러브콜이 왔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그럼 도대체 현재의 나는 넥스트에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던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 일단 내가 ‘왜’넥스트에 왔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6년동안 빡세게 수능준비를 하던 인문계 여학생은 어떻게 갑자기 (학사학위도 주지 않는)NHN NEXT에 오게 된 것일까. 내 삶에서 항상 옆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았다.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무거운 포토샵 책을 뒤적이며 혼자 이것 저것 눌러보았고, 중학교 1학년땐 꾸준히 돈을 모아 타블렛을 사 코렐 페인터로 그림을 그렸으며, RPG 메이커로 ‘홍천중학교 던전’이란 게임을 깨작깨작 만들었고, 고등학교 때는 UCC 제작에 흠뻑 빠져 여섯 개의 공모전에 나갔다. 저것들의 공통점을 뽑아내 보았을 때, 난 분명히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난 내가 사랑해온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위해 넥스트에 왔다. 내가 생각하는 ‘제작’의 범위는, 개발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기획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서비스를 만들고자 할 때, 어떠한 프로세스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머리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첫 스텝이 넥스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11월부터 난 넥스트 밖의 세계를 조금씩 훔쳐보기 시작했다. 훔쳐봤다 라고 적은 이유는, 왠지 개발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려는것이 약간 민망하게도 느껴졌고, 23학점, 21학점 이런 식으로 꽉꽉 채워서 개발공부를 하던 나는, 다른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개발할 시간을 떼어내어 그 곳에 가져다 붙여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난 하고싶었고, 밤새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아 한국컨텐츠진흥원에서 하는 ‘C-School’과, 소프트뱅크벤쳐스에서 하는 ‘대학생벤쳐기사단 UKOV’를 시작하게 되었다. C-School에선 일주일에 두번씩 모여 강연을 듣고 팀프로젝트를 했으며, UKOV는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미니스타트업을 하였다. 개발공부를 하는 시간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지난 두달의 겨울방학동안 나는 내 꿈의 3요소였던 개발, 기획, 디자인 중 개발 이외의 나머지 2개에 나를 전념시켰다. C-School에서는 Ticker Rabbit이라는 팀(21세부터 33세까지의 다양한 나이대의 개발자, 제품디자이너,기계공, 미디어아티스트, 마케터, 기획자, 그리고 플로리스트.)의 팀을 조직하고 이끌며 팀장을 맡고 있다(4월 26일 세바시 무대를 바라보며 지금도 열심히 하고있다). UKOV에서는 그 단체에서 연결해준 번개장터로 매일 디자인 인턴으로 출근했으며,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스타트업을 기획해본 뒤, 디캠프에서 열리는 2월의 D-Day 다섯팀에 선정되어 VC들 앞에서 피티도 하였다. 두달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굉장히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고, 내가 그리는 미래에 한 발자욱 더 나아갔다 생각한다.

하지만 ‘개발’ 앞에서의 나는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기획과 디자인에 투자한 시간만큼 나의 개발 속도는 느려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지금의 실력이 성에 차지 않는다. 신박한 디자인의 웹사이트를 뚝딱 만들고, 예쁜 자바스크립트 코드를 술술 짜서 보여주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찌랭이다. 찌랭이 하기 싫은 나는 지금 열심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그 큰 동기를 준 것은 바로 우리 휴먼디자인프로젝트 팀원들, Yangchigi(양치기-양념 치킨을 기리며)다.

2월 말에 팀을 정하지 못했던 나는, 팀원을 구하고 있는 팀들을 찾아보고, 거기서 ‘생산성과 심미성을 고려한 라이브러리 사용’이란 키워드에 꽂혀 이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 말고 2명은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라 사실 좀 쫄아있었다. 내가 더 자신감을 갖고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인과 기획단이었지만, 그런것보다는 ‘성실한 개발자’로 팀에 참여하고 싶었으니까. 넥스트에서의 나는 개발자인 것이다.

다시 개발자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었다.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아둥바둥 뒤쳐진 것들을 공부하고 있다. 이전의 난 백엔드쪽엔 오묘한 공포와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스터디로 공부하는 책이 ‘Servlet&JSP”책인데, 이게 실제로 지금 쓰인다는걸 아니까 밤새며 공부하고 시간가는줄 모르게 책을 읽게 된다(아직 초반이라 그런가. 흥미유발 부분만 보고 재밌다고 나대는것이 아닌지 무섭다). 서로 다섯장씩 나누어 공부해오기로 했는데, 서버쪽에 익숙하지 않은 날 배려해 내가 앞쪽 다섯장을 해오기로 하였다. 네가 꼭꼭 씹어먹고 준비해서 발표하면 빠진부분이나 이해 안되는거 우리가 찝어주겠다고(이런 마음은 아니셨을수도 있다. 내가 마음대로 말을 해석하고 낑낑대는것일수도. 아 공부 열심히 해야지).

팀원들이 고맙고, 이 프로젝트가 너무도 재밌고 사랑스런 아이템이란 생각도 들기에, 요즘의 개발공부는 참 재미지다. 우리의 아이템이 얼른 개발되어 내가 사용하고 싶다. 사람들의 자잘한 니즈를 콕 집어서 구현하고 있다. 지난 2주간 기획할 때는 굉장히 재밌고 설렜는데, 막상 이제 직접 개발을 할 시간이 다가오니 떨린다. 공부해야지. 이렇게 심하게 공부를 하고싶게 만드는 프로젝트와 팀원들이라니.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앞으로도 난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살 것이다. 난 기획과 디자인이 좋았고 그 기회가 와서 꽉 잡아채서 했다. 또 난 개발도 좋고, 지금 내게 개발공부를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왔기에 그걸 끝까지 써먹을 것이다. 물론 ‘전환비용’이라는 것이 있기에 너무 이것저것 벌려놓고 하나조차 제대로 못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내 꿈,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에 기획, 디자인, 개발이 자연스레 버무려있기 때문에, 난 좋아하는 모든 것을 접해볼 예정이다. 지금 시기는 ‘개발’을 파볼 시간이니 개발에 몰입해야지. 고마운 기회들. 놓치지 않을것이다.

Published by

Yurim Jin

아름다운 웹과 디자인, 장고와 리액트, 그리고 음악과 맥주를 사랑하는 망고장스터

11 thoughts on “넥스트를 다니며 개발 말고 ‘다른 것’을 놓지 않는다는 것”

  1. 넥스트에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고2 학생입니다.
    질문들이 몇가지 있는데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메일은 댓글에 적어두었습니다.

      1. 26일날 뵜던 학생입니다. 🙂 이메일을 제 정보 적는 란에 적어두었었는데(email form, name form, website form이 댓글 달때 뜨잖아요? 거기 적었었는데 안 나오나보네요.)
        제 이메일은 dlaxodnjs123@gmail.com 입니다. 학업계획서 관련 질문도 있고 면접 질문도 있는데, 꼭 이메일 한번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NEXT 가고 싶어요!

  2. 솔직한 글 속에서 많은 부분을 배워 갑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넥스트 합격을 희망하는 1인이.

  3. 글만읽어도 설레는 next!!
    이런 어마어마한사람들이 가득하다니
    반드시 합격해야지 하는 다짐을 또한번 하고갑니당

  4.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렇게 느껴지는 글도 오랜만이네요.
    읽는 동안 제 자신에게도 JayJin님의 열정이 조금씩 스며드는것 같아요.
    노력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스스로에게 충족감을 느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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