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5 20:25
고2때 쓴 글이네
난 집에 들어가면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천성이 게을러서 움직이길 귀찮아하고, 허비되는 이동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한다. 그랬던 내가 요즈음은 별로 툹툴대지도 않고 밖을 얌전히 걸어다닌다. 공로자는 바로 소설가 김영하분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이다. 김영하씨가 매 회마다 한 책을 골라 짧게는 20분, 길게는 50분정도 책에 대해 얘기해주시는 음성 파일이다. 이 책,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그 중 episode 3에서 소개하셨는데, [무인도의 토끼] 낭독을 듣자마자 난 눈물을 줄줄흘리며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렸다.
성석제씨는 원래 시인으로 시작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문장들이 은유적이고, 어찌 보면 굉장히 귀엽다.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성석제씨의 문체가 보이는데, 반복과 점층을 굉장히 좋아하시고 앞에 나왔던 소재를 맨 뒤에 다시 등장시켜 우리를 멍하게 만드신다. 정말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문체다. 세련되고 독창적이고, 유치하지 않고 의미가 깊은.. 닮고 싶다.
일단 책은 단편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때로는 일기 같기도, 수필 같기도, 언젠가 잘때 꾼 꿈같기도 하다. 책에는 60개정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매 이야기마다 그 이야기의 제목을 가운데에 두고 마인드맵을 그린 것을 보는 기분이다. 보통 평범한 소설을 생각하면 안된다. 마인드맵 그 자체다.. 도대체 생각을 어디까지 뻗칠 수 있으신지..
중간중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교육과정 표현을 빌리면 [주제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사실 진짜 작가들은 “아! 이 것을 전달하기 위해 소설을 써야지”이러지 않는단다. 독자마다 다른 해석이 있고, 독자마다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느낌을 끌어내는게 진짜 좋은 소설이다(라고 김영하씨가 말씀하셨다 하하). 내 감상은, 음.. 성석제씨가 내 묻혀있던 기억 한 귀퉁이를 톡 차서 와르르르르 쏟아져 나온 기분이다. 나의 옛 기억과, 지금의 이 고무된 감상과, 미래에 어떻게 할까의 삼위일체(?!)로 아주 다이나믹한 독서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전 같은 일이 일어날 때 더 깊게 생각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문학을 읽는것의 최대 장점이 감수성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것만이 인간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도데체 인간의 존재이유는 어디 있단 것인가, 지구상에 해만 끼치는 주제에 쓸모 없기 마련이다. 진짜 수없이 들은 말이지만 인간은 생각함으로서 의미를 찾게 된다는 건 정말 진리인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우물을 파가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가. 잊지 않도록 이렇게 글을 끼적일때조차 정리되는 나의 내면에 희열을 느낀다. 물리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세상이 더러워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잊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
1. 무인도의 토끼 : 본질은 어디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포인트 : 뚱뚱한 뱀 62마리와 배고픈 한마리
2. 자전거 나라 : 예정되로 풀리지 않는 인간사. 계층구조의 문제점이라고 봐야하나…? 남들 뒤만쫒 는 생각없는 삶 주의
3. 수집가 : 격변하는 삶. 새옹지마를 절실히 느낀다. 허허허…
4. 그림자밟기 : 감상의주안점 – 소설가의 호칭변화, 뒤에서의 정말 귀여워서 눈물이 나는 말싸움
5. 놀이하는 인간 : 비로소 우리는 위대한 놀이하는 인간을 잃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을 얻긴 했지만.
6. 무위론자 : “그라믄 머하노” 이런사람 진짜 맥빠져서 싫다.
7. 지방색 : 산에는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는 팻말을 거꾸로 돌려
“지금 산으로 들어감’이라는 뜻으로 바꿔놓았다.